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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아 창립자 잉바르 캄프라드 별세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1926년 스웨덴의 한 농장에서 태어난 잉그바르 캄프라드는 어릴적 부터 남다른 장사 수완을 보여온 인물로 유명합니다. 다섯 살 때 이미 흥정이나 거래하는 법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던 그는 12살 때부터 여러가지 생활용품을 싼 가격에 팔면서 마진을 남기고 무려 17세의 나이에 이케이를 창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943년에 이케아를 처음으로 만들었을 때, 그는 양말, 액자와 같은 생활 소품이나 필수품을 팔다가 5년 후 부터는 수공예 가구를 파는 것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였습니다. 


잉바르 캄프라드는 선천적으로 글을 읽을 수 없는 난독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이것은 사업가로 성공하기에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지만, 그는 자신이 만든 가구에 사람이름이나 잘 알려진 장소와 같이 친근한 이름을 붙여주어서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곧 사업 성공으로 이어졌기에, 자신의 약점을 초강점으로 변화시킨 불굴의 의지를 가진 인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이케아를 이렇게 전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들어 준 또 다른 특징은, 가격이 싼 것 뿐만 아니라 집에서 조립할 수 있게 만든 플랫백 시스템 덕분입니다. 납작한 상자에 가구 부품을 모두 넣어주면, 구매자가 집에서 설명서를 보고 스스로 조립하여 사용할 수 있게 한 시스템이죠. 



판매자는 부품을 만들어서 포장하기만 하면 되고, 구매자는 배송비와 조립비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어 보다 싼 가격에 제품을 살 수 있었기에 소비자들에게 엄청난 호응을 얻어, 이케아는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이루어낸 것입니다. 


하지만 셈에 빠른 잉바르 캄프라드는 세율이 높은 스웨덴을 피해서 스위스로 망명하였고, 이에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산 바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1940년대에 극단적인 파시스트 성향을 띠는 '새 스웨덴 운동'에 가입하여 활동했던 전력으로 인하여, 한 번 더 사람들의 강도높은 비판을 받은바 있습니다. 


2013년에는 CEO 자리에서 물러나 고문으로만 활동했던 잉바르 캄프라드는 91세의 나이로 별세하였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의 삶이지만 시대에 획을 그은 인물임에는 분명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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