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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적인 의미에서 '실용적'이란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를 하나 들어봅시다. 어떤 사람이 화재가 난 건물의 지붕 위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친구들이 모여 여러가지 제안을 내놓습니다. 한 친구가 옆집에서 사다리를 가져오자고 제안합니다. 다른 친구는 그 사람을 옆집 지붕으로 올라가게 한 다음 빗물받이로 내려오게 하자고 의견을 잽니다. 이런 제안들은 실용적이지요. 한편, 세 번째 친구는 화재의 원인이 무엇인지 혹은 친구가 탈출하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 합니다. 이런 의문들은 핵심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즉각 제지당합니다. 아니면 한창 바쁜 사람에게 다가가 충고를 해보세요. 그 충고가 실용적인지 아닌지 금방 알게 됩니다. 당면한 문제를 쉽게 해결할 만한 구체적이고 상업적인 매커니즘을 만들어내서 여러분이 실용적인 사람이란 것을 보여주면, 사람들은 금세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업가에게 왜 그토록 열심히 돈을 벌려고 하는지를 묻고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구심을 보이면 장막이 드리워질 것입니다. 그 사업가는 여러분을 한가한 사람으로 여길 테고 여러분은 좀처럼 그의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용적'이란 말은 당면한 문제와 관련되었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어른들은 보통 '당면한' 일거리가 있고, 어떤 일로 바쁘며, 목표를 향해 달려갑니다. 실용적이란 말은 이미 달려가고 있는 목표에 도움을 주는 것이고, 비실용적이란 말은 목표 그 자체를 반성하는 것입니다. 철학자들의 충고란 대체로 두 번째 유형입니다. 흔히 그런 충고는 필요 없다고 생각됩니다. 충고를 해도 이미 하고 있는 일에 도움을 줄 수 없지요. 오히려 하고 있는 일을 방해한다고 여겨지지요. 사무실이나 근무 시간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런 충고는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요? 당연히 대답은 이렇습니다. 철학자의 충고는 어떤 일을 진행할때도 중요하지만 더 나아가 그 일이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어떤 일을 잘 해내는 데도 중요하지만 더 나아가 그 일을 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할 때도 큰 역할을 합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쉽게 잊힙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이런 사실을 상기시켜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목표를 수시로 반성하고 삶의 방식 전체를 재고하도록 해주는 것이 철학의 임무가 되었습니다. 살면서 찰학을 한다는 것은 여러분이 선택한 수단뿐 아니라 그 수단을 가지고 성취하려는 목적에도 근거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상식은 또한 '지나치게 일반적'인 것을 비난합니다. 살면서 우리가 맞닥뜨리는 것은 이론이 아니라 '상황'이라고들 합니다. 신뢰를 받는 사람은 경험이 많은 사람이지요. 대체로 경험이란 개별적인 사실에 익숙하다는 의미입니다. 정치에서 필요한 것은 일반적인 사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상황에 정통한 것이지요. 추상적인 인간과 원리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람과 대책을 알아야 합니다. 역사가는 문명이나 진보라는 모호한 관념을 믿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산업계에서 필요한 것은 경제 가치론이 아니라 현재의 비용, 김금, 가격에 대한 지식입니다. 삶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눈과 손을 훈련시켜서 분별하고 조작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지, 이성과 상상력을 훈련시켜서 보편성을 사랑한 나머지 세부사항을 모호하게 하고 궁극적인 것을 더듬거리느라 정말로 중요한 당면 과제들을 간과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상식이 일반화를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식은 지식을 매우 존중하며 일반화가 없다면 지식도 없다고 이해합니다. 규칙과 분류체계 심지어 법칙과 이론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정신이 일반화하는 버릇은 제한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정 정도를 넘어서면 일반화는 터무니 없어지고 공상이 되어버려 사실로부터 멀어지고 뜬구름을 잡게 됩니다. 단단한 땅 위에 굳게 뿌리를 내린 상식적인 사람은 그런 사변을 모욕이나 오락 또는 공허한 경탄으로 간주합니다.
철학이 상식을 어기는 이유는 철학이 일반화를 하기 때문이 아니라 언제 멈추어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결국 어느 누구도 일반화를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사고할 수 없으니까요. 철학자는 상식을 어길 수밖에 없는데 철학자가 자신의 소명에 충실하려면 상식의 틀 안에 멈춰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할 수 있는 한 일반화 하는 것이 철학자의 특수한 임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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