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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는 지금까지도 이따금 '암흑시대'라고 불리는 시대를 이어 출현했습니다. 암흑에 잠긴 시대를 빛의 시대가 계승했다는 생각은 어느 정도 타당합니다. 밤의 장막이 걷힌 뒤 환호하며 태양빛을 맞이한 세계가 완연히 기력을 되찾아 다시 한 번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중세라 불러야 더 마땅할 시대를 이렇게 어둡게 만든 것은 그 시대에 험악한 이름을 붙일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시야가 흐렸던 탓이 큽니다. 혹시 우리가 르네상스를 빛의 시대라고 부른다면, 한낱 화려한 빛에 눈이 부셨기 때문은 아닐까요? 이러쿵저러쿵 해도 르네상스는 중세가 낳은 자식이며, 아이는 대개 부모가 남긴 짐을 떠안게 마련입니다.
중세는 몽매주의라는 짐을 안겼습니다. 몽매주의는 '계몽을 가로막고, 지식과 지혜의 진보를 방해'하지요. 몽매주의는 중세가 막을 내릴 때까지 사라지지 않고 르네상스 시대 내내 명맥을 유지했지요. 몽매주의는 자기를 공격하는 자들에게 숨을 죽이고 긴장하며 눈을 떼지 않고 있다가 그들이 나이를 먹거나 쇠약해져서 용기를 잃고 기세가 꺾였을 때 갑자기 달려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몽매주의가 16세기에 승리를 거두었던 것입니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몽매주의는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미신도, 두려움도, 뿌리깊은 악한 정념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잠시 마음속에 쌓아둘 수는 있을지언정 곧 더 맹렬한 기세로 기필코 터져 나올 것입니다. 따라서 관점에 따라서는 르네상스 시대를 중세보다 더 어둡게 그릴 수도 있습니다. 마키아벨리, 메디치가, 보르자가는 오랫동안 밉살스러운 죄악의 화신으로 여겨졌습니다. 진실이 과장되고 왜곡되었음을 감안하더라도 르네상스는 황금시대가 아니었습니다. 존 웹스터의 말피 공작부인 같은 공포스러운 연극은 미치광이의 악몽 이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르네상스는 찬란히 빛나는 시대였지요. 태양에 흑점에 있듯이, 르네상스의 빛은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기에 더욱 밝게 빛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시대든 짧은 문구로는 온전히 정의하기 어렵지만, 르네상스는 인간을 발견한 시대였다고 표현해도 어울립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인간 일반뿐 아니라 개인도 중요했습니다. 중세에도 개성이 뚜렷한 인물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요.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 투르의 그레고리우스, 샤를마뉴, 리우트프란드, 아벨라르,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두스 정도만 떠올려도 충분합니다. 이 시대의 새로운 것이라면, 개인의 완성이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에 눈을 뜨고 동시대인들과 후손들에게 어느 누구와도 다른 나를 알리고 싶다고 자각했다는 것이지요.
과장을 약간 보태자면 중세인은 플라톤이 말한 동굴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며, 이들이 마침내 햇빛이 쏟아지는 동굴 밖으로 탈출하여 눈앞에 펼쳐진 광경과 그 너무에 있는 무수히 많은 가능성에 매혹되자 르네상스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현실 세계가 앞길을 막기라도 하듯이, 르네상스인은 이상의 왕국을 찾아 현재는 물론 과거와 마래에도 살아야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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