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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적'이라는 말은 흔히 인간의 민감한 감수성에 비친 삶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것, 혹은 적대적인 우주와 용감하게 싸우는 개인의 행위를 묘사하는 것, 혹은 그러한 영웅과 그의 우주를 묘사하는 강하게 압축적인 산문 등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파파 헤밍웨이'라는 가부장적이면서 남성적인 그의 별명이 시사하듯이 그의 특징적인 주인공들은 소위 헤밍웨이적 규범을 준수하는, 다시말해서 아주 어렵고 위험한 상황에서 강한 의지와 전문가적인 기술로 최선을 다해 행동하거나 극기하는 남성 주인공들입니다. 이들이 흔히 전쟁이나 투우, 수렵, 낚시 같이 죽음을 감수해야 하는 폭력적이고 위험한 상황에 놓인다는 사실은 헤밍웨이의 삶의 철학이 모든 인간과 생명을 지배하는 죽음에 대한 정직한 대면에서 나오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헤밍웨이 문학의 총결산으로 인정받고 있는 '노인과 바다'에서도 우주에 편재하는 죽음과 파괴의 요소들이 여전히 등장합니다. 주인공은 죽음을 앞둔 나이 많은 노인 어부이고 80여일동안 단 한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하고 있는 '운이 다한 어부'입니다. 마침내 먼바다까지 나가 고생끝에 대어를 잡지만 상어떼에게 고기 살을 모두 빼앗기고 앙상한 뼈만 끌고 돌아옵니다. 노인은 그러나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 굴복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상태에서도 어부로서 최선을 다해 행동하며 겸허하게 만족합니다. 어부와 물고기로서 생명을 걸고 서로의 상대와 최선을 다해 싸우는 상황을 하늘의 별과 달의 운행처럼 우주질서의 자연스러운 리듬에 순응하는 만족스러운 삶으로 인정합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유대 역시 의미있게 부각됩니다. 노인은 홀로 바다에 있으면서도 그를 걱정해주는 육지의 소년에게 마음으로 의지하고, 마을 사람들은 뼈만 남은 물고기를 보면서도 그가 바다에서 벌인 투쟁의 의미를 이해해줍니다. 죽음과 파괴가 여전히 삶을 지배하지만 이에 대응하는 긍정적인 신념과 삶의 태도가 자신있게 제시되고 있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헤밍웨이의 작품'이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헤밍웨이의 문학세계 안에서 전형적인 인물은 흔히 죽음이나 패배를 당하면서도 진짜 패배는 자신이 견지해야 하는 이상적인 모습, 자신이 맞추어 살아야 하는 그 기준에 달려 있음을 알고 있는 인물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헤밍웨이의 세계에서는 규범과 훈련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없는 듯한 세계 안에서 그러한 규범과 훈련이 의미를 주기 때문입니다. 시닝 버린 듯한 현대세계 안에서 인간은 스스로 규정한 규범을 실천함으로써 비로소 이상적인 의미를 실현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헤밍웨이 인물들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자신이 스스로 정한 규범, 그리고 그 규범을 지키도록 스스로를 단련하는 모습은 현재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 되었습니다. '노인과 바다'를 읽음으로써 헤밍웨이의 의도를 좀 더 깊이 파악하고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다시 한 번 곰곰히 생각해 볼 때가 아닐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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