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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 입니다. 피츠제럴드에게 반하게 된 계기가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피츠제럴드로 분했던 톰 히들스턴의 모습에 푹 빠져서였다는 것이 함정입니다만, 결과적으로 영화 덕분에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펴 들었고 개츠비를 그려내는 피츠제럴드의 모습을 좀더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었기에 이 작품을 사랑하게 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피츠제럴드를 논하면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의 작품의 주축을 이루는 것이 바로 이 '아메리칸 드림'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물질적인 성공에 대한 열망이자 좀 더 넓게는 신천지에서 새로운 인간 삶의 가능성을 펼쳐보려는 이상이기도 한 '미국의 꿈'이야 말로 미국 건설의 원동력이며 미국적 정신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데, 피츠제럴드는 이러한 꿈이 구체적인 인간의 삶을 어떻게 모양짓는가를 예술적으로 형상화하려고 시도한 작가라고 평가 받습니다. 그가 문학을 통해서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점검을 했던 것은 일종에 시대적 요청이기도 했습니다. 남북전쟁 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고있던 미국은 1차대전의 특수로 물질적으는 경제적 호황을 맞게 되지만 반면 전쟁의 경험을 통해 전통적 가치와 도덕률들에 대한 믿음은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흔히 1920년을 '잃어버린 시대'라고 지칭하는데 이런 표현을 통해 이 시대가 격변하는 사회 속에서 향락주의와 허무주의, 그리고 물질만능주의로 뒤덮여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특히 산업의 발달로 거부들이 늘어나면서 가난한 이들의 박탈감은 극대화되었고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는 아메리칸 드림에대한 총체적인 점검을 요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의 모습은 한 여자를 향한 집념을 보이며 부를 축적해온 남성입니다. 얼핏 보기에 그저 로맨스 소설로만 비춰질 수 있는 이 작품은 사실 1920년대를 여과없이 보여주는 사실주의적 소설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책 중간중간에서 몇 가지 중요한 점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선, 초기 미국이라는 나라는 평등을 부르짖으며 계급사회인 유럽과는 차별화를 두며 발전한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19세기 들어와서 자본주의 경제가 발전함고 동시에 자연스럽게 빈부의 격차가 생겨나고 이 가운데 상류사회가 형성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유럽의 상류사회는 '귀족'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그들은 교양있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하는 사람들이었던 반면, 미국의 상류사회는 오직 경제력만이 잣대로 작용했습니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피츠제럴드는 자신이 파악한 바 부유층의 속성과 그러한 부유층에 편입되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데이지에 대한 개츠비의 헌신은 단순히 첫사랑에 대한 집착이 아닌, 자기계발의 열의에 찬 한 가난한 청년이 부유하고 아름다운 여인에게 느끼는 매혹이며 그런 점에서 개츠비의 사랑은 상류계급에 대한 하층계급의 선망과 거기에 편입되고 싶은 욕망, 더 나아가 물질적 성공과 그것이 보장하는 새로운 삶을 향한 꿈 그 자체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습니다. 개츠비에게서 이러한 아메리칸 드림이 상징으로서 다가오는 데이지의 매력을 피츠제럴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그녀의 집 현관은 돈으로 사들인 별처럼 반짝이는 사치로 빛나고 있었다. 부가 가두어 보존해주는 젊음과 신비, 많은 옷들이 보장해주는 신선함, 그리고 가난한 이들의 격렬한 생존의 투쟁들 위에서 안전하고 거만하게 은처럼 빛나는 데이지의 존재를 개츠비는 뚜렷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즉 "나는 부에 매혹당하지 않았다. 단지 그것이 주는 인생의 가능성에 매혹당했을 뿐."이라고 말하는 피츠제럴드처럼 개츠비 역시 데이지의 부가 제공하는 젊음과 신비와 인생의 가능성에 매혹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츠비가 결국 부딪치게 되는 현실, 그리고 피츠제럴드가 그리고자 하는 현실은 바로 이러한 부를 소유한 사람들의 무책임하고 이기주의적이고 파괴적인 모습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저는 작품 마지막 부분을 치달으며 데이지가 개츠비를 향해 보이는 모습에 너무도 화가나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부자들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비판은 주로 데이지의 남편인 톰의 묘사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는 유산으로 재산을 물려받은 부자로서 그 재산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에 상관없이 스스로를 귀족처럼 생각하며, 자기 손으로 부를 축적한 개츠비와 같은 신흥부자들을 경멸합니다. 정작 자신은 유부녀 머틀과 밀회를 즐기고 있으면서도 필요할 때는 도덕률과 가정의 소중함을 들먹거리고 밀려드는 이민자들에 대한 반감에 백인문명의 위기를 경고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기득권을 주장하며 속물적인 도덕률을 설파하는 톰은 부를 이용하여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강력한 힘을 행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속물적인 부가 사회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미국 사회가 부자체를 숭배하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데이지가 사랑하던 개츠비를 버리고 톰과 결혼했던 것도 그의 엄청난 부 때문이었으며 머틀이 톰과 밀회를 즐겼던 것도 마찬가지 이유였습니다. 바로 상류사회로 잠시나마 편입되었다는 환상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톰의 쾌락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는데도 말입니다.
개츠비의 꿈이던 데이지는 부자가 된 개츠비에게 마음을 주는 듯 하다가 결국 안전한 톰의 세계로 회귀합니다. 그리고 비열한 톰의 내연녀였던 머틀의 죽음, 개츠비와 윌슨의 죽음 이후에 더욱 공고해지는 톰의 세계는 모든 것을 요구하고 아무것도 내어주지 않는 이기적인 부자들의 속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세계에 편입되기 위해 모든것을 지불한 개츠비가 작품의 제목이 말하듯 진정 위대하다면, 그 위대성은 어디에 기인하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위대한 개츠비를 그저 로맨스 소설로만 치부하지 마시고 미국의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의 욕망, 즉 상류 사회를 향한 갈망과 그곳으로 편입되고자하는 욕심을 그려주는 작품으로서 인물간의 심리를 잘 파악하며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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