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최초의 동물실험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배가 고픈 한 사람이 길을 지나가다가 먹음직한 열매를 발견했습니. 입에 고인 침을 삼키며 막 열매를 베어 물려는 순간, 아차, 독이 있는 열매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확인해 봐야겠다고 생각한 이 영리한 사람은 옆에 있던 개에게 이 열매를 먹여봅니다. 개는 열매를 맛있게 먹는다. “~ 이 열매를 먹어도 되겠군.” 이제 사람은 마음 놓고 열매를 깨뭅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상에 불과하지만 과거 간헐적, 소규모, 비체계적으로 이루어지던 동물 실험이 방식이나 양의 측면에서 눈에 띄게 변화하게 된 시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과거 비체계적으로 이루어졌던 동물실험이 여러 문화권에서 종종 이루어졌다고 한다면, 오늘날 체계적인 동물실험은 근대 의학과 과학의 발생지인 서구 문화권에서 시작되었다. 신 중심의 기독교 철학을 기반으로 삼고 있던 서구 문화권은 이미 근대 이전에도 인간과 동물을 명확히 구분 짓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신과 신의 형상을 본 따 창조된 인간, 그리고 동물, 즉 인간은 신과 닮은 존재로서 이 땅의 만물을 다스릴 책임과 권리를 부여받은 영혼을 가진 자로 생각되었지만, 동물은 이런 인간의 다스림을 받아야하는 영혼을 갖지 못한 존재로 간주되곤 했다. 이러한 전제는 근대 이후 이곳에서 동물실험을 비롯한 동물이용이 대대적으로 증가한 하나의 기반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15세기에서 16세기로 흘러갈 무렵, 유럽은 이동 수단의 발전과 신항로 개척등의 힘을 받아 순풍에 돛 달 듯 상업이 부흥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왕과 귀족 등 소수 상류 계층의 힘에 맞먹는 부를 가진 상인 세력이 등장했다. 봉건적 신분 계층이 흔들리고 부를 축적할 새로운 기회가 증가하면서 이제 역사의 스포트라이트는 왕이나 신이 아닌 개인을 비추기 시작했다. 철학은 인간 개인이 갖는 고유의 가치를 밝혀내는 데 집중하였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이성이라는 개념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근대 철학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철학자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를 한 번 쯤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생각하는 능력은 지금도 여전히 인간의 가장 특별한 , 특히 동물은 갖지 못한, 능력 중 하나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반면 동물은 인간과 같은 자율적인 생명활동을 하는 존재가 아니라, 단지 기계적 생체 리듬에 따라 조절되는 개체로 간주되었다. 인간과 동물간의 단절은 한층 더 심화되었고 세계는 더더욱 인간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지구는 인간을 중심으로 돈다나.

합리적인 사고를 지향하는 근대적 인간상은 경제적으로도 합리적인 활동을 하는 인간을 기대하고 지지하는 철학적 기반이 되었다. 과학, 기계의 발달이 가공할만한 산업 발달 속도를 가능케 했고, 여기에 한 차원 업그레이드 된 국가 간 경쟁이 더해지자 자본주의는 가속력 상태의 안정 궤도에 들어섰다. 이러한 자본주의는 경제적 이윤을 더 많이 창출해내기 위한 새로운 수단을 요구했고, 그 중 하나로서 동물이 본격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동물원과 서커스, 사냥, 동물쇼 등의 오락산업과 소규모 농장에서 대규모 공장식 농장으로 변화된 축산업, 많은 기업들이 제품의 개발과 실험을 위해 이용하게 된 동물실험 등은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해 인간이 손쉽게 선택할 수 있었던 동물 이용의 사례들이다.

  과학 역시 동물 이용에 한몫을 하는데, 합리성과 정확성을 중시하는 과학적 연구방법은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많은 실험을 필요로 했고, 그 중 수많은 실험들이 동물을 수단삼아 이루어졌다. 의학 분야와 과학 분야 뿐만 아니라 인간의 행태와 심리를 알아보기 위하여 심리학 등의 사회 과학 분야에서도 많은 동물 실험이 진행되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이미 동물을 수단으로 삼는데 익숙한 실험문화는 인간으로 하여금 손쉽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동물을 실험 대상으로 선택하도록 도왔다.

  인간이 인간이라는 이유로 또 다른 생명체의 권리를 박탈하고 인간의 쓰임을 위해 그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만 귀하다는 편향된 시각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할 때가 아닐까.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