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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세기와 12세기에 너무 큰 힘을 소진한 까닭에 교황권은 한동안 힘을 잃었습니다. 교황권을 뒷받침했던 라틴어로 된 사상가들은 단테가 1300년에 이탈리아어를 새롭게 창조하고, 그다음 2백 년 사이에 프랑스어와 영어, 독일어가 명확한 형태를 갖추어가면서 빠르게 토대를 잃어갔습니다. 라틴어라는 형식에 대한 믿음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종교 교리를 새로운 언어 양식에 맞게 바꾸려는 욕구, 특히 자국어로 된 성서를 갖고자 하는 욕구가 생겨났습니다. 이런 식으로 공격을 받은 로마 가톨릭은 신학 연구를 촉진하고, 중세 대학의 설립을 도왔습니다. 여기에 더해 그리스 황금시대의 문헌으로 돌아가 아퀴나스와 함께 교리 형식으로 알렉산드리아가 물려준 철학을 되살려 내려 했지요.
하지만 백약이 무효했습니다. 유럽은 내부에서 요동치는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민족주의를 감지했습니다. 인도와 아메리카를 발견하기 위한 항해는 처음에는 상상력을 자극했지만, 나중에는 야심 찬 정치가와 군인, 예술가의 탐욕스러운 손으로 막대한 양의 황금이 흘러들어가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세계의 맥박은 더 빠르게 뛰었습니다. 수립된 지 1천 년을 넘어서면서 콘스탄티노플은 투르크인의 손에 넘어갔고, 이 도시가 간직하고 있던 필사본과 예술품, 장인은 이탈리아로 밀려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발명가, 개혁가, 예술가, 혁명가가 되었지요. 체사레 보르자는 이탈리아 제국을 세우려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가톨릭교회에서 독립하려 했고, 결국 성공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인간은 신의 은총으로만 자기 영혼을 구원할 수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이에 근거해, 유럽을 다시 한 번 전쟁의 구렁텅이로 빠뜨린 이념 논쟁과 장황한 말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이 맺어질 때까지 계속됩니다. 그 결과 대체로 유럽 북부는 프로테스탄트가 되었고, 남부틑 가톨릭으로 남게되었지요.
바로 그때, 다름 두 세기 동안 유럽에서 프랑스가 우위를 차지하는 계기가 된 루이 16세의 재위가 시작되었습니다. 봉건 시대는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지요. 마지막 남은 대(큰) 가신들은 계속되는 종교전쟁을 겪으면서 힘을 잃었습니다. 군주제는 잃었던 것을 되찾으면서, 이제 화려하고 눈부신 베르사유 궁전에서 한때 반독립적이었던 봉건 기사의 지위를 고상한 척하는 조신으로 격하하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부르봉가의 시도는 대체로 성공했지요. 부르봉가는 변함없이 프랑스의 전제군주들이었고 성직자와 귀족 같은 특권층을 자신들보다 아래에 두었습니다. 게다가 견제받지 않는 정부 조직에 대한 통제권을 소유했습니다. 이러한 조직은 곧 남용되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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